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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자에서 이물질이 나왔다
    토끼씨 작업실/그림일기 2017. 11. 7. 01:08

    발단은 쿠키를 먹고 싶어서 슬리퍼 찍찍 끌고 대형마트를 찾아간 것부터였다. 창고형 마트 컨셉을 따라 한 높은 매대에서 간신히 꺼낸 과자는 1000원 안팎. 그 땐 그 천원 때문에 며칠을 깔짝대는 거슬림에 시달릴 줄은 몰랐다.

     

    개요는 간단했다.  과자를 손으로 쪼개먹던 나는 그 사이에서 딸려 나오는 투명한 실을 발견했다. 조각난 과자를 들어올리자 실로 연결된 나머지 과자 조각이 딸려 올라와 공중에서 덜렁 덜렁거렸다. 이게 뭐야. 그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과자와 과자가 정체 모를 이물로 연결돼 공중에서 지구본처럼 돌아가는 그 무빙이란, 조금 빡(?)이 쳤다.

    티슈 위에 그것을 살포시 올려두고 나는 곧바로 인터넷 창을 띄웠다. '과자 이물질' 거기까지만 쳐도 이물질 발견, 이물질 신고, 과자 이물질 보상, 그런 것들이 자동 검색어에 떴다.

    보상에 눈이 먼저 가서 보상을 클릭했더니 기업을 상대로 협박을 해서 몇 백만 원을 뜯어냈다느니 판매점인 마트에 가져가서 환불을 받았다느니 식약처에 신고해도 부서 간 뺑이(?)만 돌리고 흐지부지 됐다느니, 기업 쪽에서 과자 두 세 박스 가지고 찾아와서 사과하고 퉁 친다느니, 어쩐지 '세상이란 이렇게 건조하고 팍팍하단다' 라는 일면을 본 것 같아서 기분이 가라앉았다.

    기분이 저조해진 나는 최대한 간단히 끝내고 싶어 식약처 홈페이지에 가서 직접 신고를 했다. 십 초 안팎의 동영상도 찍어서 첨부했다. 그게 금요일이었다.

    이틀이 지난 월요일, 043으로 시작하는 번호가 휴대폰에 찍혔다. 모르는 번호에다 유선전화번호라 받지 않았다. 또 하루 뒤에 같은 번호가 부재중으로 떠있었고 같은 번호로 문자가 남겨져 있었다. 식약처 식품안전관리과라는 이름을 대고 있었다. 벌써 귀찮았다. 043의 번호 너머 담당자는 지역관할이 아닌 것 같으니 이물질과 제품을 서울의 담당부서로 부치라는 안내를 해주었다. 귀찮다는 감상이 슬슬 올라오던 시점이었다. 편의점 택배를 알아보고, 늦은 밤에 옷을 챙겨 입고, 편의점 택배를 부쳤다.

    그 후로도 몇 차례 이물질 성분에 따른 관할문제로 여기저기 전화 뺑이(?)에 돌려지고, 마침내 제조사가 있는 철원의 보건소와 전화 연결이 됐다. 철원의 담당직원은 대뜸 제조사에서 통화를 요청해왔다는 말을 전해왔다. 그리고 제조사에서 곧 전화가 걸려왔다. 품질관리를 담당한다는 대리는, 어딘지 어수룩한 느낌의 아저씨였다. 중년의 대리님은 직접 사과하고 경위를 설명하겠다며 찾아갈 곳을 말해달라고 했다.

    나는 부담스러운 것은 둘째 치고라도, 사과를 위해 철원에서 서울까지 다녀간다는 것이 이물질 발생의 본질적 해결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기업의 안일한 대응방식인가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한없이 저자세인 목소리가 신고 취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대로 가면 100% 제조사 과실이라 몇 달 영업정지 처분이 내려지고, 회사평판이 떨어지고, 각종 프로그램에 이름이 오르내리게 될 것이라는 얘기를 해주었다.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신고자가 신고를 취소하는 방법뿐이 없다고 했다.

    나는 솔직히 그런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그저 관리감독 예산이 더 배정되거나 제조환경 개선에 대한 연구비가 더 편성된다거나 하는 발전적인 조치가 취해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 당연한 후속절차는 낭만적이기만 한 생각이었고, 당국의 조치는 오로지 한가지 방법의 처벌만 상정해둔 실정이었다.

    원인 규명과 현상 개선은 없고 무식하게 처벌 하나만 둔 모양새가 어디서 많이 보던 양상이라 나라 살림살이를 맡은 조직들에 새삼 실망하는 와중에도 휴대폰 너머로 중년의 잔뜩 쪼그라든 목소리가 계속 넘어왔다. 난감하다는 얼굴이 아른거리는 듯 했다.

    나는 그 얼굴을 멋대로 상상하고 순식간에 그 가족들을 상상했다. 이 아저씨가 내 아버지와 같은 또래일 것 같다는 실없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영업정지가 떨어지면 가계사정이 궁핍해질 사원들이라든가, 괜히 쓸데없이 짠한 백그라운드가 그려졌다. 그러다가도 사실은 드라마처럼, 중년의 대리는 컴플레인 전용의 계산적인 얼굴을 가졌을 뿐이고 나는 반복되는 기업의 무책임에 속아 넘어가는 것은 아닐까 의심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이 왔다갔다 하는데도, 전화 너머로 이어지는, 바쁜 일상에 지친 목소리, 수없이 덤벼드는 위협에 불안해하는 목소리가 자꾸 걸렸다. 이 사태는, 정말은 책임 소재가 어디일까? 혹시 정말은 윗선의 압력으로 빡빡한 예산에 시달리고, 사람은 모자라고, 모자란 사람 굴리려니 이물질 관리는 허술하고, 관련 연구도 비용을 삭감 당하는 내부사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속으로 드라마를 써댔다.

    대형 판매업체와 대형 유통업체에 과자를 납품하기 위해 수 많은 제조사들과의 과도한 입찰경쟁으로 이 사태가 벌어진 것은 아닌가 싶어, 언제부터 제조를 했는지, 우리나라에 다른 경쟁업체는 없는지 묻기까지 했다. 이물질이 들어간 예상 경위와 지난 컴플레인의 이력, 사후 관련 조치와 연구는 어떻게 했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렇게 이어지는 질문에 감사 나온 직원 대하듯 성실하게 응답하는 목소릴 듣고 있자니 또 한구석으로는 짠한 마음이 들었다.

    검색결과에 나왔던 것처럼 사측에서 제조하고 있는 과자를 사죄의 의미 겸 몇 박스 보내겠다고 했다. 잠시 솔깃하여, 받아서 지인들에게 나눠줄까 생각도 했다가 안 받겠다고 말하곤 신고 취소를 약속했다. 이물 발견부터 신고, 관련 부처의 조사와 대응, 사측의 말까지 태클 걸고 싶은 데가 한 두 군데가 아니었으나 결국 취소를 했다. 신고가 진행되고 처벌을 받는다 해도 그것이 본질적인 해결이 아니라 쓰잘데기없는 퍼포먼스에 많은 사람들이 시간낭비를 하는 결과가 될 것이 눈에 선연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전화를 끊기 전 마지막으로, 과자 몇 박스 보내는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연구를 하고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는 것에 더 신경 쓰고 집중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상이 변하려면 이런 것 하나부터 믿어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아저씨의 정말 감사하다는 대답,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는 대답이 '정말'이 되기를, 누구보다 더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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