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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국이라 생각난, 내가 만난 사이비들.
    토끼씨 작업실/그림일기 2020. 2. 25. 18:10

    제발 감소세로.

    자고 일어나면 코로나19 확진자와 의심자 숫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일주일 전만 해도 20명 대였는데 벌써 1000명 돌파가 눈앞이라니. 500원이었던 일회용 마스크는 6000원으로 오르기도 하고, 쟁여놓을 식료품을 마트에서 주문하려니 품절이 잦아져 티켓팅을 하는 기분으로 수시로 들여다보면서 물품을 낚아채야 한다. 아직 풀리지 않은 날씨처럼 일상이 잔뜩 얼어있는 게 피부로 와닿는다.

     

    ‘이게 웬 신천지?’

    코로나19보도에 ‘신천지’라는 단어가 새롭게 뜨는 걸 보고, 그저 마이너하고 독특한(?) 종교단체를 가리키는 대명사라고 생각했던 단어가 실제 종교단체의 이름이라는 걸 알았다. 폭증하는 확진자의 단위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그 사태와 무관하지 않은 단체가 무섭고……음……어쨌든 그랬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서워 죽겠네.) 어쨌든 그 때문에 의뭉스럽고 넌덜머리났던 사이비들의 행태가 생각났다.

     

    그들은 공기 중 미세먼지처럼 흩뿌려져있다.

    ‘도를 아십니까’도 사이비로 넣어야 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연관되기 꺼려지고 짜증이 난다는 측면에서는 같이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보통의 1인이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이비를 만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횟수만 따지면 적어도 5-6년 사이에 20-30회 정도를 만났다. 나중에는 멀리서 아우라와 2-3인 한 팀으로 서성거리는 모양새만 보고도 미리 감지하는 호크아이를 얻어 핸드폰+이어폰=무시 스킬을 발휘할 수 있게 됐지만 뭣도 몰랐던 초기에는 고민 상담을 하거나 바나나우유를 뜯기거나 으슥한 그들의 본거지로 인도되거나 했었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 역시나 전통적 강세는 길거리고, 대문 밖, 메시지 안, 대형 쇼핑몰 안, 카페 안, 한강공원, 지하철역사 안 등등 다양했다. 그들의 포교 방식은 클래식하게 길을 묻는 척 물꼬를 트는 방법부터 설문요청, 심리검사, 무작정 문을 열고 쳐들어오기 등등이 있다.

     

    사람의 외로운 구석을 파고든다.

    귀신같다는 말을 쓸 만큼, 그들의 분석력이 높다거나 공략능력이 좋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아마도 수많은 포교와 거절이 반복되는 동안 당연하게 쌓인 얄팍한 노하우 몇 가지를 돌려쓰는데 결국 ‘외로움’을 건드린다. 우리 할머니는 당신의 적막한 하루에 수다 몇 분이라도 첨가하기 위해 대문을 두드리는 사이비들을 그다지 막지 않았다. 사이비들은 신나라 영문 모를 주문과 기도문을 외고, 할머니는 집밖으로 그들을 내보내고 나서야 사이비라며 꼭 욕을 했다. 함께 기도하자고 종종 방에서 끌려나오는 일을 당하는 나도, 할머니의 근본적 외로움을 다 채우기가 벅찼으므로 그들에게 매몰찬 축객 령을 차마 내리지 못했다.

     

    까딱하면 그렇게 사이비가 되는 거야.

    그리고 그들은 내 외로움도 건드렸다.(심지어 할머니를 자주 찾아왔던 데와는 또 다른 종교단체였다. 대체 얼마나 있는 거야.) ‘친구’라는 말에 유독 약했던 내게, 고등학생 여자애를 동반하고 집엘 쳐들어온 중년여자는 둘이 동갑인 것도 인연인데 친구라도 하라며 전화번호를 교환하게 했다. 서로 생일까지 같았던 우연을 두고, 나는 ‘나도 동네친구가 생기는 걸까!’하는 설렘까지 가졌었다.(하, 순진했던 나여. 이 바보야, 진짜 아니야.) 그 뒤로 일요일마다 놀자는 연락이 꼬박꼬박 왔고(왜 일요일에 나와 놀자고 했겠니, 응?) 드디어 과제 없이 한가했던 주말, 한강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분식집 코스를 돌아 영화를 보자며 어느 상가 3층으로 들어갔다.

    이런 데에 교회가 있을 줄이야. 아무도 없이 어둑한 예배당에 들어서고 나서야 ‘이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 온 게 같은 또래 여자애들이 아니었다면 꽤 위험한 상황일 수도 있겠구나, 아니 그냥 지금도 위험한 상황이구나 라고 멍하니 감상에 빠졌다. 굿 윌 헌팅에 나왔던 배우가 나오는 종교색 짙은 영화를 멍청하게 보면서 ‘결국 날 여기에 끌어들일 목적이었구나’ 적잖은 실망감과 배신감마저 느꼈다. 마침 엄마에게 전화가 왔고, 자초지종을 들은 건너편에선 다그치는 소리가 넘어왔고, 집에서 날 찾는다고 둘러대며 빠져나왔다. 그 후 일요일의 권유를 거듭 거절하자 그들은 곧 떨어져나갔다.

     

    길을 묻는 말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스루

     

    친절하게 길을 설명해주면 여지없이 이어지는 ‘그런데 기운이 참 좋아보이셔서 그런데-’를 향해 말꼬투리 잡아 대거리를 하기도 하고, 내게 이렇게 정성을 쏟아도 시간 낭비라고 타일러보기도 했지만, 역시 제일 좋은 방법은 깔끔한 무시라는 것을 깨달았다. 온라인에 나도는 사이비 역관광 매뉴얼은, 나 따윈 감히 엄두도 못 낼 신박함이라 그저 읽고 대리만족을 하는 데에서 그쳤다. 덕분에 정말 길을 몰라 곤란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겠지만, 외로움과 호의마저 이용당하는 더러운 기분을 더 이상 느끼기가 싫었다.

    이렇게 날 좋은 때에 룰루랄라 걸어가다가 꼭 붙들린다. 그들의 주요 활동지.

    사람의 기본 구성 물질엔 ‘외로움’이 있게 마련인데.

    과연 그 사람들은 타인에게 이러한 피해와 상처를 입히고 있다는 자각이 있을까. 타인의 고통보다야 자신의 외로움과 생존이 더 커 보여서, 그래서 자신들이 제일 큰 피해자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걸까. 자신의 빈 곳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건강이든 마음이든 응당 이용해야겠다는 인생들은 그 얼마나 불쌍하고도 고약한가.

    사람의 기본 구성 물질엔 ‘외로움’이 있게 마련인데, 그들은 정말 외로움을 다룰 다른 어떠한 방법도 찾지 못한 걸까, 아니면 모른 척 자신을 유기한 것일까. 방치하고 곪아 터질 지경이 되어서도, 마귀 탓이라는 누군가의 한 마디에 냉큼 올라타면 그 속은 정말 평온하고 고요할까.

    유행병만큼 위험한 건 시약으로는 검출해내지 못하는, 이런 오래되고도 넓게 퍼져있는 골병들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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